[메디먼트뉴스 김민서 인턴기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얼마 전 ‘제 15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키노라이츠 관객심사단 자격으로 국내 단편 스물 다섯 점을 접했다. 각본, 연출, 연기 모두 통틀어 무흠한 수작들도 있었지만, 극장 밖을 나온 뒤 계속해서 곱씹게 된 건, 완성도와 무관하게 근래 보기 드문 낭창한 감성을 소유한 B급 영화들이었다. 오늘은 그중 두 편의 실험작을 꼽아 실으려 한다.

먼저 언급할 작품은 대략 20여 분의 짤막한 단편 ‘잠복근무의 맛’이다. 한달 째 잠복근무 중인 형사 동우와 만수는 퍽퍽한 즉석 식품에 단단히 싫증이 난 상태다. 차 밖으로 이탈할 수 없는 이들은 나름의 레시피를 강구해 편의점 재료들로 맛있는 끼니를 직접 요리하기로 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품을 들인 덕에 퀄리티는 배가 되고 그들은 이를 배불리 해치우며 생기를 되찾는다. 흑백톤으로 일관하던 극은 그들의 정서에 맞춰 색을 입는다. 일상은 무미건조하고 지난한 과정의 반복이지만 작은 계기로도 사소한 행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감독의 신념이 경쾌한 톤 앤 매너로 드러난다. 이 경우에는 소위 ‘병맛 영화‘로 부각되어 온 b급 영화라기보다는 저예산 단편으로의 개념에 더 부합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최소한의 비용을 투입해 가공한 영화는 그 자체로 극중 인물들이 투박하게 손질한 음식의 성질과 닮아 있고, 심적인 포만감마저 채운다.

한편,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주목받은 바 있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의 경우는 그보다 확장된, 병맛 영화의 정석 같은 작품이다. 학교는 축제 준비로 분주하지만 대학생 ‘수진’의 머릿속은 전날 의도치 않게 하룻밤을 같이 보낸 동성친구 ‘문정’으로 가득하다. 친구들은 문정에 관한 문란한 소문을 나열하며 수진을 나무라지만 그녀에게는 어젯밤 목격한 문정의 초록빛만이 선연하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UFO가 학교 인근에 출현하고, 가슴 폭발로 수진의 친구들을 비롯한 다수가 사망한다. 문정의 행방을 찾던 수진은 초록빛 총을 들고 UFO를 상대하는 그녀를 발견하는데, 문정은 진실한 사랑의 힘을 지닌 자만이 무찌를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약자가 되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수진은 그제야 진심의 진가를 깨닫고 문정과 힘을 합쳐 지구를 구하기로 한다. 고전적인 메시지를 젊은 인사이트를 토대로 키치하게 그려낸다. 엉뚱함과 괴랄함 사이를 오가는 학원물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구작 ‘다세포 소녀’가 연상되기도 한다.
명작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영화씬에 범상찮은 기운을 불어넣어 줄 실험작들이다. 상투적인 교훈을 지녔지만 통통 튀는 화법 덕에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오늘 소개한 두 작품은 내일 대단한 단편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두 작품 전반에 흐르는 명랑한 기운들을 꼭 극장에서 만끽해 보시길 적극 권유한다.
